Critic 

떠도는 자들의 목소리- 박경주의 <26일의 고고학>에 부쳐.                        

박수진 (독립 큐레이터) 

 아주 오랜만의 박경주 개인전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 긴 시간 다양한 현장에서 미술의 경계를 밟아온 박경주가 그 현장의 시간을 어떻게 시각화했을지 매우 궁금했다. <26일의 고고학>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쩐탄란의 26일의 기록 뿐 아니라, 박경주 작가의 21년 작업과 마주하게 하는 고고학적 현장이었다.

1. 이주자들

 

 박경주 작업의 중심에는 항상 이주자들이 있다. 그 역시 이주자였던 시기, 차별에 저항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주노동자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독일 거주 외국인이면 반드시 방문해야하는 베를린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이주노동자들 모습을 촬영하면서1), 이민자는 바로 자신의 문제임을 보여줬다. 이후 1960년대 한국에서 독일로 이주한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다룬 <베를린 한인회 송년회>(2000)는 그동안 한국에서 다뤄왔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에 대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이주노동자로서 그들과 대면하게 했다. 그의 사진 속에는 팍팍하고 고단한 삶, 녹록치 않는 생활을 견뎌온 이주자들의 현실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는 한국의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을 마주하고, 독일에서 자신이 겪었던 차별과 피해자라는 그 위치에 그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독일에서의 피해자가 한국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가있는 상황은, 바로 소수자와 다수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보여주는 ‘이주’에는 디아스포라나 향수, 그리움이 없다. 대신 그의 작업에는 ‘이주자들의 목소리’가 있다. 그는 다양한 형식으로 ‘당사자성’, 이주자 정체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실험2)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박경주의 작업은 소수자의 예술이라 하겠다.

 

2. 잊힌 죽음

 이번 전시 <26일의 고고학>은 어느 결혼이주여성의 죽음과 그의 일기에서 비롯한다. 작가는 <란의 일기>라 명명하며 오랜 시간 그녀의 죽음과 일기에 천착해왔다. 때로는 피해자의 소송 대리인으로서, 때로는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그녀의 죽음이 잊히지 않도록 역할을 바꿔가며 매달려왔다. 2008년 봄에 일어난 사건은 2018년 공소시효가 끝났다. 공소시효가 끝나고도 2년이 지났다.

 필자가 그녀의 죽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배우 없는 연극>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2013) 공연에서였다. 공연 소식을 매우 인상적이었던 포스터를 통해 알고, 공연을 보기 전까지 이 공연은 결혼이주여성에 관한 연극이자 퍼포먼스일 것이라 예측했다. 박경주 작가의 장르 경계를 밟는 작업에 대한 기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이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공연은 연극이자 퍼포먼스였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형태의 르포였다. 작가는 잊힌 죽음을 다양한 관점에서 뒤쫓는데, 사건 그 자체와 그것을 드러내는 형식은 여러모로 파격적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이 공연은 2011년 초연 이후 몇 차례 개정됐고 희곡집 <란의 일기>가 개정 발간3)되어 이번 전시에 출품되었다.

 이번 전시는 박경주의 <존경받지 못한 죽음> 시리즈의 연장에 있다. <존경받지 못한 죽음> 시리즈는 <독일아리랑, 45년에 묻다> (박경주 기획,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독일 파독광부기념회관·한인문화회관)의 오프닝 퍼포먼스로 선보였던 ‘파독광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낯선 이국땅 수 십 미터 지하에서 숨진 광부는 어느 곳에서도 애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그도, 그의 죽음도 잊혀졌다. 작가가 불러낸 죽은 광부는 묻는다. “당신은 나를 기억하는가?”. 박경주의 퍼포먼스는 늦었지만 그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잊힌 죽음은 이곳 한국에서도 있다. 작가는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에서 죽은 이주노동자들, <란의 일기> 의 결혼이주여성의 죽음, 마지막으로 <26일의 고고학>으로 시리즈를 완성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다. 가장 큰 애도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존경받지 못했던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애도하고, 존엄을 되돌려줘야 한다.

 <26일의 고고학>은 잊힌 죽음을 다시 불러낸다. 마치 고고학 발굴 현장처럼 사건 현장을 고증함으로써, 그의 잊힌 죽음이 더 이상 잊히지 않도록 ‘신체 없는 쩐탄란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3. 떠도는 자들의 목소리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 사회가 진실을 외면한다면, 진실이 스스로 인격화해 사람들 앞에 서는 수밖에.” ‘신체 없는 목소리’는 인격화된 일기를 통해 발화한다. 타인의 신체를 자기화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소리 내어 말한다.

 이번 전시 <26일의 고고학>은 퍼포먼스 작품 <만약에 일기가 사람이라면>, <2018형제>, 오브제 설치 <나무비석길>, 오디오북 <쩐탄란의 일기 여기에 잠들다.>, 영상설치 <26일의 고고학> 등 신작과 함께, 희곡집 <란의 일기> 가 전시됐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설치 작품과 더불어 수행적 작업이 병행되어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전시에서 행해지는 일시적이고 일회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전시를 관통하는 수행성이 이번 전시에 있다.

 관객참여 퍼포먼스로 이뤄지기도 했던 <만약에 일기가 사람이라면>은 작가의 발언처럼 참여 관객 한 명 한 명이 한 페이지의 일기가 되어 란의 기록을 읽고 수행한다. 작가와 배우, 두 명은 수평을 맞추어 공연장 천장에 매달려서 관객의 일기 수행에 개입한다. 이 퍼포먼스는 전시기간 중에도 매일 세 시간씩, 작가와 출연 배우가 서로의 몸에 의지하며 수평을 맞춰 천장에 매달려 란의 일기를 수행한다. 세 시간이라는 공연 시간은 쩐탄란의 사망 시간으로 추정되는 세 시간을 표현하고자 함이다4). 밧줄에 매달려 있는 퍼포머의 시간은 쩐탄란이 밧줄에 매달려 삶과 죽음을 가르던 시간이다.

 <2018 형제> 역시 전시기간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로서, 쩐탄란의 추락사건의 경찰 기록물을 기록한 아카이브와 함께 수행됐다. 특히 작가가 강조하고 있는 ‘당사자성’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경찰복을 입은 결혼이주여성이 사건을 설명하는 형제 퍼포먼스에는 경찰과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중첩된 당사자성이 존재한다. 사건을 설명하는 그녀는 경찰이면서도 또한 죽음에 이른 결혼이주여성이기도 하다. 실제 중국 동포인 퍼포머는 발화자가 되어 낯선 억양으로 이 사건을 말한다. 낯섦에는 집중이 필요하다. 낯선 억양의 이야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처럼, 우리는 낯섦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소수자의 목소리에 더욱더 집중해야 한다.

 이번 전시의 공간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전시공간의 앞부분은 설치작업과 함께 수행적 작업이 전시되었고, 뒷부분은 애도의 공간으로 연출되었다. <나무비석길>은 일기 한 장 한 장의 문장이 나무비석이 되었다. 26일간의 한국에서의 삶을 16장의 일기로 남기고 간 쩐탄란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길이다. 그리고 함께 전시된 <26일의 고고학>은 작가가 작업 중인 동명의 실험영화를 모티브로 여러 대의 모니터에 설치한 영상작업이다. 작품의 스토리보드와 한 컷 한 컷의 영상은 시간이 흘러 변하고 잊히는 것을 방지하듯, 사건 속 장면 하나 하나를 발굴하고, 마치 곤충채집하듯 한 장면씩 고정됐다.

 전시 제목이 <26일의 고고학>이듯, 이번 박경주의 전시는 쩐탄란의 한국에서의 26일간의 기록에 묻혀 있는, 그 죽음의 진짜 진실을 찾고자 진실의 파편들을 발굴한 고고학 현장이다. 그리고 진실을 추적했던 과정의 기록이며 아카이빙이다. 이로써 우리는 쩐탄란을 비롯한 잊힌 죽음을 애도하고, 신체 없는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게서 빼앗았던 존엄을 되돌려준다.

 

4. 소수자의 매체

 박경주는 판화와 실험영화를 전공하고 시각예술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사진과 영상,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초기의 작업은 이후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들과의 협업으로 뮤직밴드, 인터넷방송국과 TV, 연극과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변이했다. 또한 문화단체 대표라는 역할도 그의 작업의 한 축이다. 이렇듯 그는 화이트큐브의 작가가 아닌, 소수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 어떤 매체도, 역할도, 자기화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는 답했다. “내가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당사자성’이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소수자로 남자이다. 그리고 작가로서 나는 사회적 예술을 하며 매 순간 미술의 경계에 있는 것이다.”

 

주석

1) ‘이민신청자’ 작업은 <Connected>그룹전 (베를린커뮤니케이션 박물관,1999)에 처음 소개됐고, 이후 그의 두 번째 개인전 <워킹 홀리데이>(인사미술공간, 2001)에 전시되었다.

2)박경주는 2002년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 3에서 <이주>, 쌈지 스페이스에서 선보인 이주노동자뮤직 프로젝트, 2004년 이주노동자 선거 유세 퍼포먼스를 안양/광주/대전/창원/대구에서 한 바 있으며 2004년 조흥갤러리에서 이주여성 삶 이야기를 전시했다. 이후 이주노동자방송국, 샐러드TV, 결혼이주여성들로 구성된 다문화극단 샐러드 등을 운영하며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3)2008년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쩐탄란'(Tran Thanh Lan, 22세)이 유품으로 남긴 16장의 일기를 모티프로 창작된 <란의 일기>는 2011년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에서 초연됐고, 대학로 혜화동 일번지 소극장, 웹생중계 등으로 <란의 일기 개정판 1.0>이 공연됐고, <배우 없는 연극>는 <란의 일기 개정판 2.0>으로 아르코 소극장에서 발표됐다. 이후 희곡집 <란의 일기>는 2019년 책으로 발간됐다.

4)이 퍼포먼스는 쩐탄란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감금된 상태에서 도망치기 위해 밧줄을 만들어 아파트 배란다로 탈출해 매달려 있었던 마지막 순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일기의 9페이지, 상대 배우는 일기의 마지막 페이지인 16페이지로 인격화한 것이다. 특히 작가가 수행하고 있는 일기의 9페이지에는 사건의 진실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2020)

26일의 고고학 연표.png

26일의 고고학 연표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란의일기'와 관련된 박경주 작가의 창작과정을 연표로 보여준다. ‘26일의 고고학’展 출품작 (서울시립미술관 세마창고),

ⓒ박경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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